현대의학이 놓친 ‘생명의 전체성’

학적 진단에서 의료 장비에 의한 검사 지표가 규격화되어 있다는 말은 현재의 검사 시스템으로는 측정할 수 없는 질환의 경우 ‘이상이 없다’는 결론을 얻게 된다는 말이기도 하다. 환자는 분명 어떤 이상으로 고통을 호소하는데도, 이상이 없다는 진단을 받게 되는 경우를 말한다. 오늘날 많은 ‘원인 불명성’ 질환자들이 바로 그런 예이다.

최첨단 의료 장비라고 해도 질병의 초기 전구 증상, 즉 병으로 나타나기 직전의 단계에서는 병의 상황을 제대로 알아낼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아무리 발달한 진단 장비라고 해도 인체의 정교하고 미세한 메커니즘을 모두 밝힐 수는 없다. 현대의학시스템으로 원인을 알 수 없는 경우는 대개 ‘신경성’이나  ‘스트레스성’ 등의 병명을 얻게 된다.

특히 인체의 구조적 이상인 기질성 질환과 달리 기능성 질환의 진단에서는 많은 허점을 보여 왔다. 현대의학의 질병관은 인체의 기능의 변화는 구조의 변화에 따르는 것이라고 보았다. 즉 위장 기능에 이상이 생기는 것은 그 위장의 구조에 변화가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코넬의과대학 교수이자 내과 전문의인 에릭 J 카셀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화단에 핀 꽃‘한 환자가 요통을 호소하여 X-ray를 촬영한다. 만약 X-ray에서 탈출한 척추간판이나 다른 구조적 이상을 보이지 않는다면 이 환자는 아무 이상 없다는 설명만 듣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이 경우에는 분명 무언가 이상이 있음에 틀림없다. 그렇지 않다면 허리가 아프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고전적 질병이론에 따르면, 이 경우는 아무런 질병도 존재하지 않는다. 환자가 아무리 고통스러워하더라도 구조적 변화가 없다면 질병이라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동안 현대의학에서 매달려온 구조적 변화를 찾는 진단법이 실제 환자의 고통을 헤아리는데 얼마나 모호했는지를 지적한 말이다.

현대의학은 첨단 과학적 장비와 지표를 이용한 검사와 진단이기에 정확할 것이라는 관념 또한 잘못된 것이다. 오진율이 높게 나타나고 있다. 암 진단을 예로 들자. 현대의학의 메카라는 미국의 경우 암 진단의 오진율이 44%에 이른다. 미국 루이지애나 주립대 연구팀이 암 환자 250명을 대상으로 사망 전 진단명을 비교한 결과, 111명이 암이 아니었거나 진단 부위가 잘못된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나라는 오진율에 대한 통계 자료가 없다. 그러나 세계보건기구가 2000년 발표한 세계 각국의 의료수준 평가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58위다. 의료 수준을 감안할 때 오진율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과학기술을 이용해 아무리 인체를 낱낱이 해부해 각 장기의 기능을 완벽하게 이해한다고 해도 그것만으로 우리 몸의 전체적 기능을 이해할 수는 없다. 각 장기 상호간의 작용관계와 마음의 작용에 대해서도 통찰해야 비로소 인체에 대한 전체적이고 올바른 이해가 가능할 것이다. 질병의 부분만을 분자생물학적으로 접근해서는 결코 ‘전체적 유기체’로서의 인간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물질세계, 즉 눈에 보이는 세계에만 매달려온 현대의학은 가시적인 진단법과 치료법을 선호한다. 병의 원인은 몸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보이지 않는 마음이 스트레스에 시달릴 때 생기는 병이 더 많다. 그러나 현대의학의 치료법은 보이는 물질과 몸, 그리고 병든 기관에만 집착하고 있다.

보이지 않는 세계의 존재를 놓쳐버린 현대의학이 질병을 제대로 치료하지 못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른다. 물질론적 사고방식에 기초를 두고 발전한 결과 커다란 한계에 부딪쳐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 모두가 절대적으로 믿고 있는 과학적 의학의 명백한 한계이다.

현대의학은 스스로도 인체를 기계적으로 접근한 데카르트적인 생명관의 한계를 인정하고, 현대에 들어서면서 극단적인 기계론을 접고 생명체의 유기적 관계를 인정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서양의학이 태어난 뿌리가 분석적 기계론적 환원주의와 심신이원론이기에 그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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