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 앞에서 무력한 의사

턴이라는 초보의사로 환자를 처음 대한 것이 27년 전이다. 그 시절 나는 잔뜩 긴장한 채 의학 교과서에서 배운 간단한 처치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고 덤벙대는 풋내기 의사였다. 주사기 바늘은 환자의 정맥을 찾지 못해 번번이 헤매었고, 간단한 상처를 봉합하면서도 식은땀을 흘려야 했다. 응급환자라도 만나게 되면 머릿속이 하얘질 만큼 미숙한 시절이었다. 선배들의 노련한 대처에 감탄하면서 더욱 주눅이 들기도 했었다.

만성적인 수면 부족과 과중한 업무로 ‘인간의 한계를 시험하는’ 고된 인턴과 레지던트 시절을 견딜 수 있었던 것은 오직 하나다. ‘지금은 비록 미숙하지만 경험을 쌓으면 유능한 선배 의사들처럼 될 것이고, 어떤 환자도 제대로 볼 수 있을 것이다’는 믿음이 있었기에 힘든 날들을 버틸 수 있었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계속되는 수련을 거치며, 머릿속 지식이 무의식적 지식으로 조금씩 몸에 배면서 나는 풋내기 의사 딱지를 뗄 수 있었다. 신경외과의사로 제대로 인정받는 개두술(머리를 여는 수술)도 무사히 마치고, 첫 집도에 썼던 메스를 넣은 기념패를 뿌듯해하며 받기도 했다. 그리고 나는 차차 익숙하고 능숙하게 환자들을 대할 수 있었다. 머리 손상으로 혼수상태가 되어 응급실에 실려 온 환자를 응급수술로 구해 내고, 의식을 찾은 환자를 대할 때는 더할 수 없이 흐뭇했다. 마치 신이라도 된 것 마냥 자부심을 느꼈고, 내가 얻은 지식과 권위에 기쁨을 느끼곤 했다. 그러나 그 건방지고 오만한 기쁨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편백나무 숲언제부터인가 나는 무력해지기 시작했다. 똑같은 상태의 환자를 수술해도 어떤 사람은 낫는데, 어떤 사람은 오히려 악화되었다. CT상으로 보기에는 전혀 문제가 없는데도 환자는 고통을 호소하기도 했다. 그리고 환자가 나으면 병원을 찾지 않아야 할 텐데, 계속 병원을 오고 있었다. 만성질환자들은 계속 병원을 찾아 약을 처방 받고 있었고, 그 처방약을 오래 먹으면서 다른 이상을 호소하기도 했다. ‘경험을 쌓아 실력을 갖추면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믿음은 깨졌고, 내가 자부심을 갖고 공부한 의학에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현대의학은 과학성, 즉 객관성, 재현성, 보편성을 바탕으로 세계의 중심의학이 되었다. 언제 누구에게나 인정되는 ‘객관성’, 똑같이 시술하면 똑같은 결과를 얻는 ‘재현성’, 어디에서든 두루 통하는 ‘보편성’을 바탕으로 한 ‘근거 중심 의학 (evidence based medicine)’이라는 장점을 갖고 전 세계의 주류의학으로 설 수 있었다. 그러나 이 과학적 의학이 실제 임상에서는 불확실하기만 했다. 교과서에서 배운 의학적 이론은 맞지 않을 때가 많았고, 같은 질병에 걸린 사람도 동일하게 병이 진행되지 않았고, 같은 증상의 환자를 동일하게 수술해도 결과는 달랐고, 의학적 정설은 계속 바뀌어갔다. 최첨단 의학을 공부한 의사라고 자부하던 나는 불확실하고, 모호하고, 비과학적인 상황 앞에서 번번이 당황해야만 했다.

현대의학의 불확실성에 대해 미국의 외과 의사 아툴 가완디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우리는 의학을 지식과 처치가 질서정연하게 조화를 이루는 분야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의학은 불완전한 과학이며, 부단히 변화하는 지식, 불완전한 정보, 오류에 빠지기 쉬운 인간들의 모험이며, 목숨을 건 줄타기이다.’ 의과 의사의 경험을 통해 현대의학의 모호성을 강조한 말이다.

인간이 완전할 수 없듯이, 의학 역시 완벽할 수는 없다. 그리고 아무리 첨단 현대의학이라고 해도 인간의 질병의 고통을 모두 덜어줄 수는 없다. 의학이 완전할 수 없기에 임상의학에서 불확실성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것도 안다. 그러나 내가 품게 된 회의는 불확실한 세상을 살고 있는 우리가 원초적으로 갖게 되는 그런 의문이 아니었다. 내가 열정을 갖고 공부한 현대의학의 질병관과 의학적 이론에 대한 회의였다. 나는 혼란스러웠다. 내가 믿고 있는 최선의 치료법이 틀렸을 수도 있다는 것이. 고민이 계속되면서 나는 점점 확신이 없어졌고, 환자를 대하는 일이 더욱 무력해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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