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단은 환자의 몫, 의사는 이럴 때 곤란하다

원발부위 모르는 4기 암, 항암치료 여부는 환자 스스로 결정해야

4기 암은 예후가 분명 좋지 않습니다. 환자 상태가 더 나빠진다면 항암치료를 해서 나빠진 것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항암치료를 안 해서 더 나빠질 수도 있습니다.

최근에 상담한 사례입니다. 원발부위가 어디인지 알 수 없는 상태인데, 어쨌든 담낭으로 전이 된 4기 암 환자였습니다.

 

원발부위를 모르는 전이암, 항암제 선택 매우 어려워

 

처음에는 담낭에 담석이 있는 것으로 의심되어 담낭을 잘라내는 수술을 하러 들어갔다고 합니다. 그런데 보니까 옆에 림프절이 굉장히 커져있어서 림프절까지 같이 잘라냈습니다.

 

조직검사를 해보니까 거기에 전이암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원발암을 찾기 위해서 폐CT, 복부CT 검사를 하고 여러 촬영을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결국은 원발부위를 못 찾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본병원에서는 항암치료를 권유했습니다. 원래 4기 암에서는 항암치료 밖에 치료방법이 없죠. 현대의학적으로 수술, 항암치료, 방사선치료가 암 치료입니다. 병소가 발견될 때는 수술을 하고, 다른 곳에 전이된 경우 항암치료밖에 할 수가 없습니다.

 

요즘 결장암, 대장암에서 간이나 폐로 전이가 잘 되는데요. 그런 경우에는 요즘 적극적으로 수술을 하는 경향입니다. 그런 경우만 제외하면 4기 암일 때는 항암치료밖에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 환자의 경우도 병원에서 항암치료를 권유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전이된 4기 암일 때는 원발부위에 따라, 원발암이 생긴 자리에 따라서 항암제의 선택이 달라집니다. 하지만 원발부위를 모른다면 항암제를 어떻게 선택해야 될지 굉장히 어렵죠.

 

그래서 확률적으로 내지는 임상경험적으로 원발부위를 추정합니다. 그 추정 결과에 따라 먼저 항암제를 선택합니다. 선택한 항암제를 2-3주 간격으로 두세 번 써본 후 다시 CT검사를 해봅니다.

 

그 결과 암이 줄어들고 있으면 계속 그 항암제를 사용합니다. 하지만 암이 그대로 있다거나 커지는 상황이라면 항암제를 바꿉니다. 그리고 나서 다시 항암차례를 여러 차례 시행합니다.

 

원발부위를 모르기 때문에 어떤 항암제를 선택해야 될지, 주치의도 아마 노심초사해서 항암제를 선택했을 것입니다. 처음 선택한 항암제가 잘 들으면 다행입니다. 하지만 듣지 않으면 제2, 제3의 항암제를 계속 바꿔가면서 쓸 수밖에 없겠죠.

 

그런데 그 사이에 암은 계속 커집니다. 항암제가 안 들었으니까요. 그리고 항암제라는 게 굉장히 독한 약입니다. 환자의 면역상태, 전반적인 영양상태가 굉장히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4기 암에서 항암치료 여부, 선택은 환자의 몫

 

이런 상황에서는 예후가 어떨지 말씀드리기가 상당히 어렵습니다. 환자분이 저에게 상담을 받으러 오셨지만, 제가 대학병원 교수님과 다른 치료를 권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대학병원 교수님이 항암치료를 권한 상황에서, 제가 다른 치료를 받으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4기 암은 예후가 분명 좋지 않습니다. 환자 상태가 더 나빠진다면 항암치료를 해서 나빠진 것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항암치료를 안 해서 더 나빠질 수도 있습니다.

 

나중에 환자가 ‘병원에서는 항암치료를 하라고 했는데, 당신 말을 듣고 하지 않아서 이렇게 나빠졌다. 책임지라.’ 이렇게 한다면 제 입장이 굉장히 곤란해질 겁니다.

 

그래서 저는 이런 상황에서 완곡하게 ‘제가 환자라면’ 또는 ‘제 가족이 환자라면’이라는 표현을 사용해서 설명합니다. 이는 대부분의 의사들이 즐겨 쓰는 표현입니다.

 

‘제가 만일에 환자라면’, ‘제 가족이 환자라면’, ‘제 지인이 환자라면’, 이런 식으로 자기 의견을 표현하는 것이죠. 의사로서 자신은 이 방법을 권하고 싶지만 자신이 없는 상황에서 쓰는 표현입니다.

 

다른 의사와 의견이 충돌되는 경우에도 씁니다. 자신의 의견을 완곡하게 표현하기 위해서 빗대어 설명하는 것입니다. 이 환자에게도 이러한 표현을 써서 설명해드렸습니다.

 

‘제가 대학병원 교수님만큼 식견이 많지 않으니 교수님 말씀을 따르는 게 좋을 것 같지만, 제가 환자라면 안 하겠다는 표현이다. 하지만 판단은 환자분께서 내려야 합니다.’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의사라면 누구나 자기 경험에 의한 판단을 내립니다. 다른 의사들은 또 자신만의 판단을 가집니다. 그 판단이 상충되는 경우 법적 책임에 있어 예민한 문제가 됩니다. 요즘 의료사고가 굉장히 많이 생깁니다. 소송으로 비화되는 경우도 아주 많습니다. 말 한마디를 잘못해서 덤터기를 쓰는 일이 왕왕 있습니다.

 

그래서 환자에게 설명할 때 대부분의 의사들이 주의를 기울입니다. 필요 없어 보이는 설명을 두 번, 세 번 되풀이하기도 합니다. 이는 법적 책임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인 경우가 많습니다. 환자분들도 이런 부분을 잘 알아두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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