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기억 속의 두 환자

삶을 바꾸어놓은 의학인 니시의학을 나는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었다. 특히 나처럼 오랜 세월 만성병으로 고생하는 이들과 난치병을 앓는 이들에게 권하고 싶었다. 와타나베 선생으로부터 니시의학을 전수받은 나는 부산 해운대에 ‘한일클리닉’이라는 자연의학전문클리닉을 열었다. 2003년 2월의 일이다. 나의 남다른 행보에 가족과 친지들은 걱정을 많이 했지만, 내 의지를 꺾지는 못했다.

설레는 마음으로 첫 환자를 맞았다. 니시의학에 대한 확신이 있었지만, 자연의학자가 되어 환자를 치료하는 것이 처음이라서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첫 환자는 60대 중반의 남성으로 3기의 간암 환자였다. 간에 생긴 악성 종양을 수술로 제거한 후 항암요법에 들어가기 전에 상담을 하기 위해 찾아왔다. 그런 경우 항암제와 방사선 치료를 계속하게 되고 암이 전이되어 사망하는 경우가 많다. 그것도 항암제와 방사선치료를 하느라 고통스런 나날을 보내다가…. 그런 사실을 환자도 보고 들었기에 ‘다른 가능성이 없을까?’ 하는 마음으로 서울에서 부산까지 찾아온 것이다. 호락호락한 병이 아니었고, 나로서도 100% 장담할 수 없는 상태였다. 우선 성실하고 진솔하게 상담에 임했고, 신중하게 생각하던 환자는 니시의학을 해보기로 결정을 내렸다. 그는 병원에 한 달간 입원해서 치료를 받았다. 단식과 식이요법, 운동요법을 병행하면서  빠르게 회복되어갔다. 하루가 다르게 몸의 컨디션이 좋아지고 있다는 것을 느낀 그는 2주가 지나면서부터는 완치될 것이라는 강한 믿음을 가졌다.

병세가 완연한 어둔 얼굴로 찾아온 그는 아주 다른 사람처럼 변해갔다. 밝은 모습으로 병원 직원들에게 먼저 인사를 건넸고, 상담을 하기 위해 찾아온 환자들에게도 이런저런 경험담을 들려주며 희망의 말을 건네기도 했다.

상담하는 모습그의 회복과 변화는 의사인 나에게도 너무나 고마운 것이었고, 자연의학자로서의 길을 선택한 것이 과연 옳았다는 생각을 거듭 하게 되었다. 한 달간 입원 치료를 받은 그는 건강을 회복해 사회생활에 다시 복귀하게 되었고 서울로 돌아갔다. 내가 무안할 정도로 고맙다는 인사를 계속 하면서 그는 병원을 떠났다.

자연의학자로 처음 진료한 그 환자를 보면서, 나는 또 한 명의 환자가 떠올랐다. 내 기억 속에 가장 아프게 남아 있는 환자. 현대의학자로 사는 것이 얼마나 희망이 없는지를 절감하게 해준 환자. 그 환자를 만난 것은 한 병원의 신경외과 과장으로 일할 때였다. 그는 18세의 남학생으로 유도를 하다가 넘어져 머리를 다쳤고 의식이 없는 상태로 병원으로 왔다. 뇌를 싸고 있는 혈관이 파열되어 출혈을 일으킨 ‘뇌경막하출혈’로 당장 수술을 하지 않으면 생명이 위태로운 초특급의 응급상황이었다. 큰 병원으로 이송하는 중간에 잘못될 수 있을 만큼 위급한 상황이었고, 나는 바로 수술에 들어가지 않을 수 없었다. 당시 상황에서 최선의 선택이었다. 환자를 데리고 온 유도관 관장과 경찰관에게 설명하고 응급 수술에 들어갔고, 수술은 성공적이었다. 환자는 응급 상황을 모면했고,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그러나 문제는 그 후였다.

중환자실에 있는 동안 환자는 병원감염으로 폐렴을 얻었다. 온갖 세균의 배양실이라고 할 정도로 병원균이 많은 병원에서 면역력이 약한 환자들은 종종 2차 감염을 얻기도 한다. 불행하게도 폐렴에 걸린 그 학생은 산소공급이 원활하지 못해, 결국 식물인간이 되었다. 환자 가족들의 슬픔은 엄청났고, 그 분노를 나에게로 폭발시켰다. 병원에서는 종종 있는 일이다. 자식이 식물인간이 된 부모가 어찌 이성적일 수 있겠는가! 그런 상황을 이해하기에 그들의 비난을 고스란히 받았다. 의사가 최선을 다하고도 잘못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보호자들에게 이해시키기에는, 오늘날 의사와 환자간의 불신의 골이 너무 깊었다.

현대의학의 근본적인 문제와 한계, 그로 인한 의사와 환자간의 불신, 방어진료를 할 수밖에 없는 의료체계 등 현대의학의 의료 현실 속에서 나는 절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절망 속에서 헤어 나올 수 있었던 것이 자연의학을 만나면서부터이다. 자연의학으로 중병을 이겨내고 수없이 감사 인사를 계속한 환자. 그리고 현대의학으로 최선을 다했지만 결국은 식물인간이 된 환자. 내 기억 속에 선명하게 남아 있는 두 환자의 다른 모습은, 어쩌면 현대의학과 자연의학의 현실을 말해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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