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목의 통합 암치료 바이블121] 암환자의 마음관리

암에 대해 충분히 알고 한 발짝 물러서서 바라보며 평정심을 유지해야 합니다


느 날 불청객처럼 불쑥 나타났지만 언젠가는 다시 떠나갈 친구 같은 존재가 바로 암입니다. 암을 친구로 사귀어 잘 지내다 때가 되면 되돌려 보내기 위해서는 몇 가지 원칙을 알아둘 필요가 있습니다.

원칙 1. 사귀기 전에 충분히 알자

연애도 그렇지만 암을 대할 때에도 제대로 충분히 알고 치료를 시작해야 합니다. 암은 지독하고 끈질긴 놈이란 건 이미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그런 만큼 어떤 식으로 사람을 괴롭히는지, 어떻게 달래면 성질이 가라앉는지, 친구로 끼고 살려면 어떤 조건을 갖추고 있어야 하는지를 환자 본인이 먼저 잘 알고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어설프게 알아서는 모르느니만 못할 때가 많은데 비슷한 종류의 암이라고 해도 찾아오는 양상은 사람마다 다 달라서 어설픈 정보를 가지고 남이 하는 대로 했다가는 낭패를 보기 십상입니다.

서점에 가면 암에 관한 책이 많은데 그중에 반은 검증되지 않은 치료법들을 다루는 것들도 많아 오히려 환자에게 해가 될 가능성이 큽니다. 암을 알기 위해 책을 구한다면 암에 대한 전문가가 쓴 전문 의학서를 보는 것이 좋습니다. 그런 책에는 신뢰할 수 있는 검증된 치료법만 실려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책 몇 권 읽었다고 암에 대해 모두 알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책을 통해 얻었던 지식은 담당 주치의와의 대화를 통해 확실하게 다지는 것이 좋습니다.

제대로 암을 알게 됐다면 암 때문에 예기치 못한 상황이 닥친다 해도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부담을 덜 느끼게 됩니다. ‘아는 것이 힘’이라는 말은 암을 두고 하는 얘기로 하나를 알 때마다 암이 한 발자국씩 뒤로 물러난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원칙 2. 수치에 일희일비할 필요 없다

암 환자들은 종종 서류상에 나타난 수치에 마음이 크게 좌지우지되곤 합니다. 분명히 어제는 정상이었는데 며칠 있다가 다시 해 보니 수치가 정상 범주를 벗어났다. 그럴 때 환자들은 수치 자체에만 매달려 너무 흥분하곤 합니다. 단지 흥분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뭐가 잘못된 게 아닌가 싶어 우왕좌왕하다가 결국 말도 안 되는 비방에 손을 대기도 하는데 내 몸에 조금 변화가 있다고 해서, 그것 때문에 기분이 영 아니라고 해서 불안해하거나 지금까지 암을 대하던 방식을 억지로 바꾸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일단 암에 걸렸으면 마음속에 원망과 분노가 치솟고 시시때때로 달라지는 몸의 변화가 나를 놀라게 할지라도 항상 평상심을 유지해야 합니다. 하루하루 변하는 수치에 좌지우지되는 것은 평상심이 없기 때문입니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암은 좋든 싫든 아주 오랜 시간을 함께 해야 할 존재입니다. 그 시간을 견뎌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마음의 여유를 가져야 합니다. 매일매일 달라지는 크고 작은 수치에 일희일비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원칙 3. 얕은수로 사귀지 마라

화학 요법이나 방사선 요법 같은 일반적인 암 치료법들은 대부분 오랜 기간 예후를 지켜봐야 해서 환자가 감당해야 할 몫도 그만큼 큽니다. 그 때문에 많은 사람이 기나긴 고통을 참다못해 ‘어떻게 빨리 끝낼 수 없을까?’ ‘이것 말고 다른 방법은 없을까?’ 하는 생각들을 하는데 암을 상대하는 데는 그런 얕은수가 통하지 않습니다.

단시간에 나를 옮겨다 줄 엘리베이터도 없고, 거센 풍파에서 나를 구해줄 구명정도 없습니다. 최소 몇 달부터 길게는 몇 년까지 그저 견뎌야 할 뿐입니다. 수술 요법도 크게 다를 건 없는데, 수술로 암 덩어리를 없앴다손 치더라도 그 암이 언제 다시 찾아올지, 어떻게 변덕을 부릴지 장기적인 안목으로 지켜봐야 합니다. 단번에 어떻게 해보려는 요령은 절대 통하지 않습니다. 얕은수로 암을 대해선 안 됩니다. 그런 얕은수에 걸려들 만큼 암은 어수룩하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있는 힘을 다해 한 걸음씩 정도를 걷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원칙 4. 거리를 두고 차분히 사귀어야 한다

이창호 바둑의 특징은 절대 싸움을 걸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보일 듯 안 보일 듯 둘레부터 천천히 다가가 어느새 상대방의 집을 잡아내곤 하는데 상대방이 뭔가 허점을 보여도 그냥 팔짱을 끼고 지켜보기만 합니다. 다른 사람 같으면 잽싸게 수를 둬서 단번에 상대방의 집을 잡아낼 텐데, 이창호는 어떤 경우든 단번에 잡으려고 덤비지 않습니다. 그뿐 아니라 상대편이 먼저 공격해 들어와도 흔들리는 법이 없이 그저 끈기를 갖고 조금씩 자기에게 이로운 수를 두는데, 그게 쌓이고 쌓여 부지불식간 난공불락의 성을 만들어냅니다.

암도 마찬가지입니다. 때로 암이란 친구가 나를 실망시킬 수도 있고 도발적으로 싸움을 걸어올 수도, 때론 위협적으로 다가올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럴 때일수록 마음의 여유를 가져야 합니다. 만약 마음을 다지지 않은 상태에서 암이 공격을 가해온다면 결국 수세에 몰리게 되지만 마음을 다진 후라면 암이 아무리 공격을 해도 충분히 막아낼 수 있습니다. 암은 내 약점을 너무나 잘 알고 그것을 시기적절하게 이용하기 때문에 함부로 덤벼서는 절대 이길 수 없습니다. 마음이 조급해질수록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이 한마디를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원칙 5. 언젠가는 돌려보낼 수 있는 친구라고 여겨라

사람들이 암을 두려워하는 것은 암과 더불어 죽음이란 단어를 떠올리기 때문인데 문제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일상의 삶까지 피폐하게 만들어 버린다는 것입니다. 암에 걸린 사람은 특히 더 그렇습니다. 암 자체로 인한 고통도 만만치 않은데 죽음에 대한 두려움까지 더해진다면 하루하루가 그야말로 지옥 같은 것입니다.

어차피 완치율 0%가 아닌 이상 살 가능성은 존재하는 것입니다. 암을 친구로 생각하기 위해서는 ‘암은 곧 죽음’이라는 공식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암은 갑자기 온 불청객이긴 하지만 언젠가 되돌아갈 친구로 그렇게 믿지 않으면 결국 입으로는 친구 삼자고 하면서도 마음은 불안과 초조, 경계심에 떠는 거짓된 나날을 보낼 수밖에 없습니다. 암과 함께할 시간을 담담히 받아들일 수 있으려면 암을 언젠가 되돌려 보낼 수 있는 친구라고 믿어야 합니다.

‘지금은 이렇게 힘들지만 언젠가는 툭툭 털고 일어날 것이다. 피투성이가 되더라도 최후에 웃는 사람은 암이 아닌 나다.’ 그렇게 되뇌는 순간 암은 정말 돌아갈 채비를 합니다. ‘아, 이놈은 내가 오래 붙어살 수 있는 사람이 아니구나. 벌써 내가 떠난 후의 삶도 생각하고 있구나!’ 하면서 말입니다. 마지막에 손 털고 웃을 수 있는 사람은 바로 ‘나’라는 희망을 잃지 마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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